[쓰고 공유]먹고 아픈 것에 대해

문혜리
2018-09-15
조회수 1644

전공 분야에 대해 쉽게 글을 써보겠다고 말을 꺼내기 무섭게,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식중독 세균 관련 사건이 바로 발생했다.

(메르스바이러스에 대해서 정리해볼까 했지만 좀 더 가볍게 식중독부터!)


9월 10일 기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보고에 따르면

전국 집단급식소 57곳에서 2,207명의 식중독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식중독의 원인으로는 ‘초코케이크’ 속 ‘살모넬라균’을 지적했다.

또한 해당 살모넬라균은 초코케이크의 원료인 난백액(계란흰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 보다

우리가 살면서 무.적.권 수십번 걸리는 병인 식중독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식중독이 뭐지?


식중독은 쉽게 말해 ‘먹고 아픈 것’을 총칭한다. 영어로는 Food poisoning 이다.

정의에 따르면 너무 급하게 많이 먹어서 체하는 것도 식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술똥도 식중독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식품 속 들어있는 세균이나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을 섭취함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을 말한다.


참고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현재 우리는 감염병을 일으키는 것이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생명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거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인 세균, 바이러스를 관찰할 능력이 없어 모든 질병을 독에 의한 ‘중독, poisoning’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혹시 굴 먹고 노로바이러스 걸린 적 있으신 분?


대학원에서 식중독 세균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나 옛날에 노로바이러스 걸려서 엄청 고생한 적 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말 많이 보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의사선생님이 어떻게 노로바이러스인 줄 알았대?’라고 물었다.

정말 노로바이러스 때문에 아팠던 것일까?


식중독에 걸렸을 때 내가 1) 어떤 음식을 먹고 2) 어떤 세균 때문에 아팠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적당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1) 환자가검물, 2) 의심되는 음식이다.

여기서 1) 환자가검물은? 똥이다 똥! 노로바이러스 때문에 배 아파서 싼 나의 설사!

정석에 따르면 환자의 식중독이 의심될 경우 환자의 설사로부터 식중독을 일으켰을 만한 세균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균이 들어있는 2) 의심되는 음식을 찾아야 정확한 원인규명이 가능하다.


대부분 노로바이러스 때문에 아픈 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동네병원에서 ‘배가 아파요. 설사를 해요.’라는 이야기에 의사선생님이 ‘노로바이러스에요’라고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데 의심할 만한 이유는 정말 많다.

내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었을지, 상한 우유를 먹었을지 저것만 듣고 어떻게 안담?

의사선생님은 이것 저것 확인하지도 않은 채 엉터리(?)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엉터리 진단을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해야지.


1. 노로바이러스가 제일 많다

1990년대 초반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전국적으로 식중독 원인규명에 대한 사업을 실시했다.

그 때 식중독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 실험(설사 실험!)이 대다수 진행되었고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체 1위가 노로바이러스로 지적됐다.

그 후로 의사선생님들은 식중독 환자들에게 쉽게 ‘노로바이러스에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2. 식중독도 유행을 탄다

아마도 그 시기에 ‘OO지역 OO음식에서 노로바이러스 검출’과 같은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노로바이러스는 흔히 해산물에서 잘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우리나라에서는 굴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아마 그 환자가 찾아왔을 때 쯤 굴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되었을 것이고 환자는 굴을 먹었다고 진술했을 것이다.


3. 어차피 치료방법은 비슷하다

식중독은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이 아닌 일반 건강한 사람의 경우 구토와 설사 몇 번 좍좍하면 끝난다.

심한 경우 피똥을 싸기도 하지만 건강한 성인에게서는 드물다.

치료방법이래 봤자 ‘밥먹지 마시구요’, 가끔은 ‘이온음료 드세요’가 최선이고 약도 항생제 외의 것이 없다.

실제로 감염의학 책을 보면 식중독 치료 방법을 ‘기다린다’로 제안한다.

그러니까 의사선생님이 봤을 때 정말 증상이 너무 심각해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그냥 만만하게 ‘노로바이러스에요’ 하는 것이다.


그럼 식중독 별거 아니네?


별거 아니긴 별거 아닌데 어린아이, 임산부, 노인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중독이 별거 아닌 이유는 세균이 입-위-소장-대장-항문을 통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일단, 입에서 항문까지의 소화관은 우리몸의 바깥부분이다.

엥????? 바깥이라니??????

우리 몸을 두꺼운 기둥이라고 생각하면 위쪽 입구가 입, 아래쪽 출구가 항문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혈관 속은 우리몸 안쪽부분이다.

우리 몸의 구멍인 입, 항문을 통해 내시경으로 소화관을 확인 할 수 있지만

우리는 혈관안에 도달하려면 주사바늘을 이용해 피부를 뚫어야 한다.

그러니까 식중독은 우리 몸의 바깥부분에 생긴 질병이니까 비교적 심각하지 않다.


두번째로, 세균은 위에서 강력한 ‘위산’을 만난다.

염산테러로 염산을 맞으면 피부가 녹듯이 세균도 위산을 맞으면 다 녹아 내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유산균이라고 하는 착한 균들이 대장에 살고 있는데

나쁜 세균이 자리잡으려고 하면 원래 살고 있던 착한 균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질병을 일으키기 어려워 진다.

위산과 대장 속 착한 균들이 나쁜 세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주는 셈이다.


그런데 어린아이, 노인은 위산이 약하고 대장의 유산균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임산부의 경우 면역력이 약해져 있어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 익히지 않은 음식은 최대한 삼가실 것을 권했다.

특히 대학원 시절 실험 결과 지저분했던

새싹채소, 고사리, 과메기, 전어, 굴 등은 최대한 피하고 최대한 바싹 익혀드시길 말씀드렸다.



식중독에 대해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냥 맛있다면 드세요’이다.

나는 소고기를 레어로 먹고 돼지고기도 딱 처음에 익었다 싶을 때 먹는다(그때가 가장 부드러워 >_<).

(고기에 대해 짧게 말하자면 소, 돼지 둘 다 유통관리가 철저하다면 그냥 대충 겉만 익혀 먹어도 된다.)

우리는 아직 건강한 성인이고 강력한 위산과 든든한 착한 균을 가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아마 아무 증상이 없을 것이고 재수없으면 하루 이틀 배가 아플 것이다.

그런 적은 확률 때문에 내 눈앞에 놓인 맛있는 음식을 놓칠 순 없다.


식중독에 대해 궁금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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