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Be_yourself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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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가장 밑 구석진 곳에 조용히 있던, 한동안 손대지 않아 기억 저 너머에 있던 2014년의 다이어리를 꺼내보았다. 왜 하필 2014년인가 묻는다면 간단하지만 약간 슬픈 대답을 할 수 있겠다. 내 인생에 뭘 꾸준히 끄적여놓은 시기가 이때 밖에 없거든.


고백하자면 나의 전직은 간호장교였고 2014년은 내게 좀 특별한 해였다. 그토록 원했던 파병에 선발되었고, 급작스레 병원일을 정리하고 국제평화지원단으로 떠나야 했으며, 파병을 준비하고 경험하고 마무리까지 하고 돌아왔던 그 모든 것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구입했던 다이어리엔 매일은 아니지만 꽤 기특하게도 일정이나 계획, 일기 같은 것들이 소소하게 쓰여있었다. 대부분 그날의 간단한 일정과 느낌들을 주로 써놨는데 나는 잠시 옛 추억이 소환되어 피식거리도 하고 가끔은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에 마음이 먹먹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는 다시 꺼내어보기 싫기도 했고, 또 일부는 대체 뭐에 대해 쓴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매일 밤 잠들기 전 작은 책상 위에서 스탠드 하나를 조심히 켠 채 열심히 끄적이던 그 순간들이 꽤 행복했고 즐거웠다는 것이다. 


나는 남수단 재건지원단인 한빛부대 3진이었는데 모체 부대는 공병이었다. 내가 속한 의무대는 기본적으로 함께 간 파병 장병들의 건강관리와 치료가 주목적이었고 그 외 대민진료나 POC 난민들 진료 및 여러 대외적인 업무를 지원했다. 워낙 열악한 환경일 것이라고 예상했고 애초에 기대치가 없었던 나는 대부분이 꽤 만족스러웠는데 파병 경험이 여러 번 있는 경비대 특전사 중 한 명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레바논(동명부대)이 100점이라면 여기는 3점입니다(헛웃음)".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라 대체 뭐가 다르기에?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는 법.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내가 누릴 수 있는 환경에 만족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사실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것 말고 의료진으로써 겪었던 이곳의 열악함, 엄밀히 말하자면 장비와 물자의 부족이 초래한 무기력감에 대한 경험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난민이었는지 누구였는지 신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껏해야 10대 중후반 정도의 소년으로 보이는 환자가 들것에 실려 왔다. 한 눈에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현지 통역인이 있었지만 원인을 명확히 알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다. 당시 우리는 레벨 1 클리닉 정도로 간단한 혈액/소변 검사, X-ray, 초음파 정도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 혈압도 너무 낮고, 맥박도 빨랐으며, SpO2(산소포화도)도 낮고, Hb 4.2(남자 정상범위 13.5~17.5), X-ray상 폐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양쪽 팔에  잡은 라인으로 종류도 몇 안 되는 수액을 줄줄이 연결하고 자동산소소생기로 당장 산소를 공급했다. 환자 모니터링을 위한 기계는 있었지만 지금 이 환자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모니터링 정도가 아니라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한 정밀검사와 수혈 및 필요시 수술 등이 가능한, 제반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이었다. 우리에겐 수혈을 하기 위한 혈액도 없고 산소도 부족했다. 두말할 것 없이 인근 스리랑카 부대의 병원으로 헬기 후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헬기를 띄울 수 없다고 했고, 이건 부대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한국군이 동일한 상황이어도 마찬가지라는 답변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흉부 총상 환자까지 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심장에 맞지 않았다는 것과 출혈이 심하지 않다는 정도? 그리 넓지도 않은 의무대 안에서 메인 진료대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어린 소년이 뭔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한쪽에 마련한 간이침대엔 총상환자가 그 와중에 웃으며 각종 처치와 드레싱(드레싱 이상이었지만)을 받고 있었다. 우리에겐 외과 군의관도, 내과 군의관도, 수술 주특기 및 마취.응급 주특기, 중환자 주특기 간호장교들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 스킬은 각종 장비와 물자가 있어야 비로소 발휘 가능한 어떤 것이었다. 예비용 산소탱크도 바닥이 났고, 구급차에 있는 산소까지 끌어다 쓰고 있었다. 이 마저도 떨어지면 끝이었다. 총상 환자는 다행히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밤을 넘기진 않았지만 소년은 아니었다. 간당 간강 하긴 했어 도 생명의 끈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결국 아침이 되기 전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환자의 죽음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일한 병원이 얼마나 풍족한 곳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 헬기는 뜰 수 있다는데 후송할 생명이 없었다. 그날 우리들은 아무도 잘못한 게 없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열악한 환경이 꼭 아픔만을 준 것은 아니다. 대민 진료를 나가면 제대로 된 도로가 없어 덜커덩거리는 흙길에 몸은 금방 피곤해졌지만 이곳만의 초록 초록하고 푸름 푸름한 땅과 풀, 나무, 하늘이 어딜 가도 한 폭의 그림같이 예뻤고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그리고 어느 야심한 밤. 숙소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불이란 불은 다 꺼졌다. 아마도 전기발전기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스럽고 괜히 겁도 났다. 그래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더 컸던 나는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서 살금살금 숙소 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때 내가 마주한 광경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발전기가 진짜 나갔는지 온 부대에 불빛이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반면 하늘에는 넘쳐나다 못해 쏟아질 것 같이 빼곡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작은 불빛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핸드폰 불빛을 죽이고 그저 넋을 놓고 감탄하기 바빴던 것 같다. 이내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고 우린 모두 각자의 불빛을 숨기고서 별빛을 만끽했다. 마치 그 속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꺼내 본 다이어리가, 그 안에 손끝으로 꾹꾹 눌러 담은 기록들이,  아팠던 기억과 찬란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벤트도 많고 싫은 것도 많고 힘든 것도 많았지만 얻은 건 훨씬 더 많았던 파병. 괜스레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고 일기를 써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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