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님과의 대화.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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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의 어느 감나무 아래서 |


화요일 새벽,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하루 지나 염을 하고, 어제 아침에는 충남 시골집 가까이에 있는 가족 묘터에 할머님을 모시는 발인날이었다.


작년 내가 급성 췌장염으로 응급실에 입원해 있을 무렵 할머님의 병세를 알게 된 후 1년 반 정도의 투병 생활을 보내며 가족들 모두 나름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해도 역시 죽음은 낯설고 당황스러우며 무엇보다 슬프다. 아내의 가족들에게는 처음으로 맞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기에 더욱 그래 보였다.


전통방식으로 여러 번의 의식을 거쳐 찬찬히 진행되는 할머님의 장례식 모습을 지켜보며 생전의 할머님과의 짧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3년이 채 못 되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내 기억 속에서의 할머님은 항상 밝게 웃고 계시는 얼굴로 기억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결혼 전에 시골집에 처음 인사드리러 찾아뵈었을 때부터 그러셨다. 첫 만남의 긴장되고 어색해하던 나에게 먼저 손을 잡아주시며 밝게 웃어주시던 할머님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 뒤로 명절 때나 투병 중에 찾아뵐 때마다 언제나 우리 이쁜 사위 왔냐며 내 손을 반갑게 꼬옥 붙잡아 주시던 그분의 따뜻함은 나에게 어렸을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에 대한 희미한 추억을 다시금 상기시키기도 했었다.


투병 생활 중 맞은 어느 명절날, 한 자리에 모인 그분의 자손들 - 아들 딸들, 며느리와 사위들, 손주들과 증손주들을 할머님과 같이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읊조리듯 어느새 내가 이렇게 많은 자손들을 낳았다고 사뭇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며 옛날 일제시대와 6.25 시절의 험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그때 동네에서 많이들 끌려가서 죽었다는 이야기나 그 시대 속에서도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행복했었던 때를 여전한 웃음과 함께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한 집 안의 어른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그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도 떠올랐다.


'나도 언젠가 이분처럼 이렇게 내 지난 인생을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때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할머님의 말 상대를 해드린 그때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아내의 가족들을 보며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할머님과 함께 하지는 못한 것 같아 그것이 다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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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4일
#릭의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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